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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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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번의 수고에 정밀한 조각 탄생
김유형 청동밀납주조 기능전승자

31평 남짓의 한옥. 어두컴컴한 작업실. 김유형 청동밀납주조 기능전승자는 이곳에서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유물을 재현하고 있다. 전통기법으로 청동 공예품을 만든다는 그. 도저히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공방에서 그의 손은 조물주나 다름없었다.


▲김유형 청동밀납주조 기능보유자

청동밀납주조에 바치는 60년 생애
계량한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가 대문사이로 모습을 비추었다. 반갑다는 인사도 채 마치기 전에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김 전승자가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안경을 쓰고 돋보기를 앞에 대고, 조명을 켰다. 다시 불상을 다듬는 작업이란다. “한 번에 만드는 게 아녜요. 수차례 다듬고 다듬으면서 더 정밀한 조각을 하는 거죠. 이렇게 밀랍으로 먼저 만들고, 본을 뜬 뒤에 청동을 부어 굳혀야 돼요.”
그는 최근 여름에 있을 전시를 준비하며 불상을 만들고 있다. 손바닥만 한 작품에는 손톱, 눈동자, 주름 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기계로 찍어내면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못할 거예요. 그게 우리 전통공예의 매력이죠. 요즘은 중국에서 찍어서 들어오는 것들이 저렴하니까 이렇게 손으로 만든 건 잘 안 팔려요. 그래도 이렇게 계속 작업을 해야 우리 기술을 알릴 수 있죠.” 그가 손바닥에 청동 작품을 올려 보인다. 그의 손가락 한마디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은 불상이다. “돋보기로 보면 더 잘 보일 거예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고요.” 그의 거친 손이 더욱 크게 보였다.


청동은 5천년 역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금속재료다. 생활, 종교, 문화용품을 아울러 가장 오래, 또 많이 사용되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청동. 김유형 기능전승자는 이 청동을 이용해 다양한 전통공예품을 재현하고 있다.
그는 청동밀납주조법의 기능전승자이기 이전에 금속장이였다. 그가 쇠를 만지기 시작한 것은 1964년.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한국기계공업(주) 부설 금속과를 졸업한 뒤부터였다. 그 뒤 (주)포항제철과 대우자동차, 한국과학기술원(KIST) 등에서 줄곧 금속분야에서 일했다. 금속장이로서 갈고 닭은 실력과 경험, 그리고 수많은 자료조사를 기반으로 그는 청동밀납주조 기능전승자가 되어 남은 생애를 바치고 있다. 올해로 81세. 37년생인 그는 60년이 넘도록 금속을 잡았다.


해외에서 찾은 우리전통의 소중함
기원전 4세기 전 청동기 시대 청동 낚싯바늘과 화살촉에다 기원전 1세기 초기 철기시대의 세형동검, 국보 141호인 청동 거울 다뉴세문경, 국보 287호인 1300년 전 백제의 금동용봉개산향로, 좌불상, 입불상 등 100여 점이 공방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원형을 그대로 축소 재현한 작품이다.


그가 전통공예에 눈 뜬 것은 선진기술을 섭렵하기 위해 떠난 오스트리아와 일본 연수에서였다. “금속 전시관과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왜 우리의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에게는 누구보다 뛰어난 청동밀납주조법이 있는데 말예요.”
그는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한옥 집을 구입해 공방을 차렸다. 크고 작은 기계들을 공방에 사들이는 데만 2천 5백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근무하던 회사에서 사용하던 기계를 중고로 구매하다보니 최신기계로 설비도 가능했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간간히 문화재 재현작업을 시작한 그는 60세 정년 퇴임 후 본격적인 재현작업에 뛰어들었다. 청동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문화재를 복원해 나갔다. 당시를 떠올리며 김유형 전승자는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회사가 아닌 자가 공방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밤낮없이 매진해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하나하나 해결 될 때마다 남모를 희열도 느끼게 됐어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청동거울인 다뉴세문경을 손에 들었다. 가장 어려운 재현작업이었다고 꼽는 작품이다. “재현까지 꼬박 일 년 넘게 걸렸어요. 본을 뜨는 데만 3개월이 걸렸죠. 일본에서도 이 거울을 재현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데요. 저도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죠. 하지만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문헌을 찾고, 조직검사까지 해 완성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얼굴을 비추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청동거울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재현작업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이 다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행착오야 있어야 내 것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죠. 끝까지 도전하고 추적해서 이룩한 거였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도 이걸 보면 스트레스가 말끔히 가셔요.”


나의 마지막 임무는 전통기능 전수
“경험과 이론이 함께 하는 게 중요해요. 문헌조사는 기본 중에 기본이에요. 청동거울은 문헌조사만 반년이 걸렸어요. 그게 기초가 되어야 현대적인 작업과 작품으로 발전도 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전통공예에 그 정도로 열성을 보이는 젊은 사람이 없죠. 그게 안타까워요.”
그는 5년에 걸쳐 한 명의 제자를 두고 기술을 전승시켰다. 하지만 제자도 전통공예품을 만들고 있진 않다. 현실적으로 전통공예를 업으로 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이어가야 우리의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는 반세기를 금속과 씨름했으니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는 것이지요. 새로 전통공예를 시작하려면 힘들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기록으로나마 전하려고 꼼꼼히 정리해 두었죠. 이걸 보면 다른 공예인들도 놀라요.”





그가 앨범 하나를 펼쳐보였다. 기능전수를 위해 사진과 함께 정리해 둔 청동밀납주조법의 비밀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설명해도 전해지지 않는 게 있어요. 특히나 공예를 전수할 때는 더 그렇죠. 그건 본인이 채워나가야 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그동안 작업해온 과정을 다 사진으로 남겨뒀어요. 제가 죽더라도 이걸 보며 우리 전통공예를 이어갈 수 있길 바라요.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장인으로서 전통기능이 끊어지지 않도록 임무를 다하고 싶어요.” 김 전승자가 지난 작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요즘은 쉬운 일만 하려고 해요. 반성해야 해요. 어려움을 딛고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발전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이 그런 노력을 해준다면 고맙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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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밀납주조
밀랍으로 원형을 만들고, 원형을 진흥으로 둘러쌓아 주형을 만든다. 주형을 불에 구워 랍을 녹여낸 뒤 녹인 청동을 부어 굳히는 방법으로 제작하는 청동공예기법. 전통방법으로 청동밀납주조를 하는 이는 김유형 전통기능전승자(96-03호)가 유일하다. 그는 노동부 기능전승자 1호이자 국가산업발전의 기여자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표창,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현대 인물 사에 등재되었다.


글. 사진_ 차지은 ‘I-View’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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