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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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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아리곳 팝스 오케스트라 이성만 대표

▲커피로 그린 이리곳밴드 이성만 대표

뽀글뽀글한 퍼머머리에 염소수염, ‘아리곳팝스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이성만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다. 착 달라붙은 청바지에 검정색 티셔츠, 겉모습만으로는 도무지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옆에서 양띠라고 귀띔해준다. 올해 63세란 얘기다. 음악이 그의 피를 언제나 뜨겁게 달궈주는 까닭일까? 뽀얀 피부에 잔주름 하나 없는 동안이다. 지난 목요일 오후4시 구월동 고용센터 뒤편, 그가 밴드연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기둥 없이 직접 지었다는 건물 5층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6시 반부터 연습이 있는 날이란다.


어릴적부터 음악에 영혼을 적신 만능 뮤지션
“인천 송현동에서 4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6살 되던 해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죠. 한글 한 자 깨우치지 못하고 송림초등학교엘 들어갔어요. 전쟁 뒤끝이라 삶은 열악했죠. 그래도 동인천의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어린마음을 영혼까지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나 봐요. 양동이에 모래를 채우고 그 위에 당시 부둣가에 지천으로 널린 마른 복어껍질을 덮어, 북을 만들어 치고 놀았으니까요. 마른 복어껍질이 제법 질긴 가죽역할을 했거든요. 이미 그때부터 인생을 음악에 저당 잡힐 운명이었던 거죠.”
누구나 원서만 내면 들어가던 선인중학교를 혼자만 합격한 것 마냥 기뻐 날뛰었을 정도로 순진무구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다. 고등학교도 자동으로 선인고등학교 밴드부로 진학했다. 공부머리는 몰라도 음악이나 악기머리만큼은, 한번 듣고 보면 어렵지 않게 따라할 정도였단다.



“고등학교에서는 드럼을 쳤어요. 행사 때면 고적대가 시가행진을 하던 시절이라, 이웃 여고생들한테 제법 우쭐댈 만큼 인기도 많았죠. 아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어요. 교과서도 없이 학교를 다녔으니까요. 대학 가려고? 음악 안 하고? 그럼 책을 뭐 하러 사? 이런 식으로 후배들을 다그쳐 교과서 살 돈으로 술 사먹고 다니던 불량학생이었죠. 당시 밴드부 분위기가 다 그랬어요. 군대서 휴가 나온 형이 저를 보고는 얼마나 한심했던지, 휴가 내내 저를 붙들어 놓고는 영어기초를 가르쳐줬어요.”
밴드부와 피아노학원에서 익힌 솜씨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음악을 했다. 주로 건반을 담당했다. 인천호텔은 물론이고 성남까지 진출할 정도로 제법 잘 나갔다. 실제로 인터뷰 중간에 직접 들려준 그의 피아노 솜씨는 여전히 수준급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다양한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만능 뮤지션이었다.
“폐결핵으로 군대도 면제됐어요. 7~8년 음악에만 미쳐 살다가, 누나가 소개시켜준 참한 아가씨와 결혼을 했죠. 결혼과 함께 음악을 접고 인천제철 철근사업을 맡아하던 큰형님사업을 돕기로 했어요. 가정을 꾸려 나가려면 무엇보다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는 큰형님의 권유에 따른 것이죠. 나이차가 15살이나 나는 큰형님은 제게 형이라기보다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숭의동 한국차량자리에 형님철근가게가 있었는데, 호이스트크레인으로 철근을 들어 올리는 게 일과였죠. 하루 종일 호이스트 버튼만 누르고 앉아있으면 되는 단순한 일상이 제게는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어요. 차라리 고문이었죠. 6년째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몸이 근질거려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나라 최초로 마루사업 시작한 사업가

결국 형님가게를 뛰쳐나가 다시 악기를 잡았다. 살 것 같았다. 다시 피가 뜨거워지고 열정이 되살아났다. 멀리 제주도까지 건너가 바닷가음악카페에서 건반을 연주했다. 그렇게 다시 5~6년을 음악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슬슬 나이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것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몇 날을 고민하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음악을 접었다. 인천으로 돌아와 마루사업에 뛰어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마루회사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죠. 동아나 한솔이 마루생산에 뛰어든 건 훨씬 나중 일이에요. 제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스웨덴에서 ‘페르고’라는 브랜드의 강화마루를 수입해서 시공하기 시작했죠. 이번에도 큰형님은 저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주셨어요. 당시는 국산철강사업 보호를 위해 수입이 금지되던 때라 3년 주기로 철근파동이 일어나곤 했죠.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창이던 공사현장마다 철근이 부족해 아우성이었어요. 그때 형님이 철근공급을 조건으로 짓고 있던 아파트의 마루공사를 저희 회사로 몰아준 거죠. 말 그대로 땅 집고 헤엄치기였어요. 돈이 쏟아져 들어왔죠.”
그가 만든 ‘Lee corea’라는 마루시공전문회사는 한때 일용직원만 150명에 달해, 노조가 생기고 파업소동이 벌어질 정도였다. 원만한 합의로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건설일용노무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파업투쟁을 벌인 최초의 사례였다. 그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매스컴도 타고 유명해지려나보다 엉뚱한 상상을 했다며 웃는다.


“돈 버는 재미에 음악은 까마득히 잊고 살았어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우연히 미사리의 한 카페에 가게 됐어요. 마침 유명한 ‘이치헌과 벗님’들이라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더라고요. 가만히 듣고 앉아있는데, 음악소리가 너무도 감미로워 울컥 목이 메는 거예요. 그러더니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죠. 순식간이었어요. ‘아, 내가 지금 뭐하고 사나?’라는 자책이 회한처럼 밀려들었던 거죠. 당장 그길로 돌아와 공장 3층을 비워 음악실로 만들고 무작정 악기를 사들였어요. 그리고는 예전 음악동료들을 수소문해 불러 모았죠.”
그렇게 태어난 ‘아리곳밴드’는 20년 동안, 정기공연만 60여회를 해오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10년 전인 2007년에는 현재의 공연장 겸 연습장을 새로 지어 둥지를 틀었다. ‘아름다운 리듬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아리곳 밴드’는 올 4월 NPO등록을 마치고 ‘아리곳팝스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꿨다. NPO란 비영리민간단체를 의미한다.
“지난 6월3일 월미도 학공연장에서 ‘아리곳팝스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호국보훈의 달 가족초청음악회를 열었어요. 물론 우리 밴드뿐만 아니라, 이곳 구월동 아리곳연습장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20개 밴드가 연합해 만든 ‘아리곳예술협회’이름으로 주관한 연합행사였죠.”
2017년이 정식으로 음악사회공헌을 위해 출발하는 원년이 될 거란다. 당장 7월과 8월에는 ‘다문화가정 초청음악회’와 ‘광복절 기념공연’이 잡혀있고 10월에는 ‘직장인밴드경연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란다.
“특히 9월2일에 있을 ‘제1회 인천시민축제’에도 참가하기로 되어 있어요. 인천시에 등록된 700여개의 예술단체 가운데 70여개를 선별해 인천아트센터에서 공연과 전시, 발표회를 열 계획이죠. 물론 음악뿐 아니라, 미술, 연극 등의 단체들이 종합적으로 참가하는 범시민축제인데, 영광스럽게도 저희 ‘아리곳팝스오케스트라’도 한 몫을 거들게 된 거죠.”


음악은 아직도 나의 심장을 뛰게한다
오후 6시가 넘어서자 악기가방을 든 단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악기튜닝소리에 연습장이 시끄러워 졌다. 아리곳밴드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밤무대가수들도 하나, 둘 등장해 각자 마이크테스트를 하고 앰프 선을 까느라 분주하다.
“왜 음악에 목을 매느냐고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잖아요? 이 나이에도 아직 내 가슴을 출렁이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줄 몰라요. 음악을 하는 동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만끽해요. 음악이 없었다면 난 아마 인생황혼기를 외톨이로 보내고 있을 게 틀림없어요. 후미진 곳에서 술에나 절어 살겠지요. 음악은 내게 구원이고 신앙이에요.”





어느 사이 단원들이 모두 모였다. 마지막 말을 마친 그도 악보를 받아들고 서둘러 악기를 챙겨 맨 오른쪽 자리로 가서 선다. 그가 오늘 잡은 악기는 베이스기타다. 드디어 연주시작을 알리는 드러머의 스틱소리와 함께 음악이 연습실을 가득 메운다. 반주에 맞춰 한 무명가수가 낯익은 뽕짝을 구성지게 불러 제친다. 방음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주한 세상 밖은 지금 퇴근길 차량들로 길게 꼬리를 물고 있으리라. ‘아리곳밴드’ 단원들은 이곳 연습실에서 전혀 다른 또 하나의 가슴 울렁이는 세상을 부려놓는 중이다. 현란하게 이어지는 간주 음을 뒤로 하고 기자는 조용히 일어섰다. 밀치고 나서는 방음문이 육중하다.


글. 그림 : 유사랑 I- View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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