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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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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전재 및 재편집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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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의미는 당신을 업고 안고 가는 것"
‘안고 가리라’ 음악 앨범 낸 부부 ‘황태음과 아씨’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일어서기란 쉽지 않다. 한 번도 쉽지 않은 실패를 세 번 맛보고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가족이 모두 떠났다. 인생의 힘든 고비를 넘기고 만난 새로운 인연인 부인을 마님으로 모시며 황태음 씨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34년 노래인생, 힘든 고비 앨범에 담다

황태음(본명 황진환)씨는 가수다. 프로 가수로 노래한지 올해로 34년, 16집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아버지 고향이 강화였는데 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노동요를 무척 잘 부르셨어요. 아버지 집안 분들이 노래를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고모가 집안 행사로 만나면 4시간 씩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노래 잘하는 아버지 노래를 듣다보니 민요를 저절로 익히게 되었다는 진환 씨는 그렇게 민요가수가 되었다. 76년부터 83년 까지 직업군인으로 재직하던 시절, 위문공연을 기획하고 철모를 두들기며 무대에서 노래했다. 제대 후 84년부터 프로 가수로 데뷔했고 전국을 누비며 노래를 불렀다. 세모유람선에서 9년 간 가수로 취업했다. 회사의 부도로 퇴사 한 후 행사가수로 열심히 활동하기도 했다. 밤무대 업소 가수로 활동 하던 때였다. 떼인 돈을 받아 준다고 나섰다가 시비가 붙었다. 채무자가 휘두른 망치에 맞아 그는 한 쪽 눈을 실명했다. 그나마 보이던 왼쪽 눈도 노안으로 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에게 노래는 그에게 삶의 전부였고 삶의 위안이었다.


▲황태음씨

장구치고 꽹과리 치며 노래하던 그가 노래를 등지면서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자동차 부품 사업을 시작했지만 곧 문을 닫아야 했다. 회갑연을 떠돌며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회갑연에서 가훈을 도자기에 써서 팔면 잘 될 것이라는 지인의 꼬임에 넘어가 도자기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 역시 망했다. 두 번의 사업 실패 후 일본으로 가서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꽤 많은 돈을 벌어서 귀국했지만 여섯 군데 라이브 바를 개업했다가 다시 실패를 맛보았다. 세 번의 실패 후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가족이 모두 떠난 후 자살의 유혹을 뿌리치고 경비 일을 시작했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경비 일이 쉬운 게 아니었다. 점점 말라가는 그에게 지인은 병원 진찰을 권유한다. 당 수치가 너무 올라서 당장 입원을 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엄포에도 일을 관둘 수 없었다. 다행히 건강은 치료로 회복되었고 5만 원 짜리 사글셋방에서 힘든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은 길을 걷고 있을 때 지금의 부인 이미성(56세) 씨를 만났다.
“부인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팔불출이 돼도 좋습니다.” 진환 씨는 부인을 하늘에서 준 보석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부인을 만난 후 건강도 회복되었고 삶이 행복해졌단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가사를 만들다
50평생 노래라고는 몰랐던 부인 미성 씨는 남편을 만나 노래를 배우고 익혔다. 황진환 씨는 국립국악음반박물관에 CD가 소장되어 있을 만큼 특출한 노래 솜씨가 있었고 노래 잘하는 그가 미성 씨는 좋았단다.
뒤늦게 둘이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기에 지금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단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이번 앨범에 담았습니다. 가사도 밤새 고민하면서 머리 맞대고 썼지요.”
진환 씨는 현재 시력이 안 좋아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부인이 나가서 돈을 버는 동안 진환 씨는 노래학원에서 수강생에게 노래를 지도한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어울림 한마당’이라는 봉사 단체와 ‘효 실천 예술단’을 결성했다. 장애인, 비장애인, 노인 등이 함께 노래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담겨있다. ‘성산 효 문화 체육 나눔회’에 가입하여 불우이웃도 돕고 있다.
“꿈이요? 내 부모처럼 모든 노인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요. 저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더라구요. 제가 잘하는 노래와 부인이 가지고 있는 끼를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눠주면서 살고 싶네요. 불우한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위만 바라볼 때 불행해질 수 있다. 자신보다 낮은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부부는 보여주고 있다.
“미성 씨는 영원한 제 아씨입니다. 부인 덕에 저는 다시 노래할 수 있었고 행복을 찾았기 때문이지요. 아씨를 위해 머슴처럼 살겠습니다. 제게 부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요. 우연하게 영화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소’에 제 노래가 실렸지만 600만 돌파 음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돈만 제가 받았어요. 그게 제 인생의 몫인 것 같아요. 돈을 쫓기보다는 부인과 함께 노래하고, 저보다 불우한 사람에게 제 목소리를 들려주며 사는 것이 제 꿈입니다.”



진환 씨가 운영하는 노래교실은 낡은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장소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진환 씨에게는 빛 잘 들어오는 좋은 건물 상층에 있는 노래학원보다 더 값진 곳이다. 행복은 마음먹은 대로 찾아오기에 힘든 상황이지만 부부는 웃을 수 있다. 돈을 쫒아 결혼하고 돈 없으면 헤어지는 이 세상에 둘이 보여주는 사랑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들이 쓴 가사처럼….


‘어쩌다 너와 내가 인연이 되어 인생길을 같이 가는구나.
멀고도 험한 길을 같이 가다가 당신이 쓰러진다면
안고 가리라, 업고 가리라,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이현주 I-view기자 o7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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